커뮤니티

Dr. Kims Hairsurgery

대머리 원장님 이야기

김수균의 탈모 이야기 <17편>

  • 작성자 : 김수균
  • 작성일 : 15-07-09
  • 조회수 : 1,977




<조선시대, 대머리도 상투했을까?>


“조선시대에 대머리들은 어떻게 상투를 틀었을까?”

“옛날 양반들은 다 수염을 기르던데, 수염이 적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필자가 모발이식을 전문으로 하다보니 사석에서 간혹 듣게 되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머리도 상투를 트는 데는 지장이 없다. 대부분 앞머리나 정수리 부근만 머리가 없기 때문에 주위의 머리만으로도 충분히 상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일부 한량들은 오히려 여름철 더위가 심할 때는 일부러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자르고 주변머리로만 상투를 틀기도 했다. 또 수염도 요즘의 가발처럼 가채를 만들어 아교 등으로 붙였다고 전해진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터럭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던 시대에 ‘채(머리채, 수염채의 채)’는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이미지 판단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몇십년 전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남학생들은 모두 삭발을 하고 다녀야 했다. 이로 인해 40~50대 이상 그 때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맨머리의 애환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기계충으로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버린 친구들의 모습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서는 두발 자유화를 외치는 학생들의 요구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해 요즘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삭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적인 이유, 사회적 의사표현, 개성의 표출 등 권위주의 시대의 획일적인 강제 삭발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 실현을 위해 삭발을 한다.

구준엽이나 율브리너, 테니스 스타 아가시 등 스킨헤드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연예인도 많다.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면도를 하여 반질반질한 머리를 유지한다. 이처럼 스킨헤드를 고집하는 유명인 중엔 대머리인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연출이 어려운 대머리를 개성표현이란 명목으로나마 위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도 키가 크고 머리는 작으면서 두상이 예쁜 사람에게나 어울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아직도 문화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일반인이 스킨헤드로 다니기에는 제약이 많다. 점잖은 회사원이 박박 민 맨머리로 거래처를 방문했을 경우의 반응을 생각하면 분명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여러모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기 쉽다.

이런 사람들 중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좋다는 방법들은 다 해봤다지만 이제 완전히 대머리 고민에서 해결됐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탈모가 상당히 진행되어 대머리가 되고 나면 모발이식 외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탈모 치료라는 것이 탈모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평상시 탈모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